무단정치 세조 시대의 정치를 한마디로 표현하는 단어입니다. 왕권을 잔혹하게 찬탈한 세조는 자신이 피로 이뤄낸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왕권강화라는 목표가 가장 중요했습니다.
세조는 조선의 건국 이념이었던 성리학적 왕도정치가 아닌 오로지 권력을 지키기 위한 왕권 강화를 위한 전제정치를 펼쳤습니다.
세조가 이같이 무단정치를 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대의명분이 없는 왕위 찬탈과 즉위 때문이었습니다. 이로인해 세조는 물리적인 힘을 통해 반대세력을 견제하였고 이를 위해 정난공신 세력인 권람, 한명회와 같은 측근 위주로 정사를 돌보는 측근정치를 시행하였습니다.
수양대군의 좌장 권람
세조의 심복 중 가장 먼저 수양에게 접근한 것은 권람이었습니다. 권람은 한명회와 동문수학을 한 사이로 한명회를 수양에게 소개를 하였습니다. 권람은 비교적 늦은 35세 나이로 장원급제를 하였으며 집현전 교리로서 수양대군을 만나 함께 사서 편찬을 도우며 친분 관계를 갖게 되었습니다.
문종대왕이 승하 후 어린 단종의 즉위와 이후 김종서 황보인 등이 권력을 독점하는 과정에서 불만을 품고 수양대군과 함께 계유정난을 일으키고 1등 정난공신에 책봉되어 초고속 승진에 승진을 거듭하여 좌의정까지 역임을 하게 됩니다.
수양대군의 책사 한명회
한명회는 불우한 어린시절을 보내면서 과거에 번번이 낙방하며 38세가 되던 해 겨우 경덕궁직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한명회는 책략에 능하고 과감한 성격의 소유자였습니다. 평생의 벗이었던 권람의 천거에 의해 수양대군과 함께 계유정난을 일으키고 정난공신에 봉해지면서 본격적인 출세가도를 달리기 시작합니다.
이조판서, 병조판저, 4도체찰사, 영의정까지 경덕궁직에서 불과 10여년만에 영의정까지 오르게 된 것입니다.
또한 한명회는 자신의 권력기반을 다지기 위해 정난공신들과 친인척 관계를 맺었습니다. 게다가 세조와 사돈을 맺음으로써 후에 딸들이 2대 걸쳐 왕후가 되기도 하였습니다.

수양대군의 위징 신숙주
신숙주는 한명회와 함께 세조가 가장 신뢰하는 인물이었습니다. 수양대군 시절 신숙주는 1452년 명나라에 함께 다녀오면서 급격하게 가까워졌습니다.
신숙주는 일치감치 조정에 나아가 그 능력을 인정받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김종서의 견제로 인해 외직으로 나가있으면서 수양대군의 거사를 도왔습니다.
세조가 즉위한 후 곧바로 예문관대제학이 되었고 수양대군의 새로운 왕명을 받기위해 명나라로 가서 왕의 고명을 청하고 인준을 받아왔습니다.
신숙주는 사육신으로 유명한 성삼문과 절친한 벗이였습니다. 하지만 집현전 학사들에게는 변절자로 낙인이 찍혀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