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역사상 가장 위대한 군주이자 찬란한 문화가 꽃피웠던 세종시대를 빛낸 수많은 인물이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분야별로 가장 위대했던 인물을 알아보겠습니다.
세종시대 명재상
왕이 아무리 뛰어난 자질과 인성을 지녔다고 하더라도 왕을 보좌할 신하가 없다면 왕도정치는 펼칠수 없을 것입니다.
조선시대의 가장 뛰어난 군주를 꼽으라면 단연 세종이 첫번째로 선택받는다면 마찬가지로 조선사를 통틀어가장 뛰어난 재상으로 황희와 맹사성을 떠올리게 됩니다.
세종은 부드러움이 필요할 때는 맹사성에게 정확성이 필요할 때는 황희를 찾았습니다. 황희는 외교와 문물제도의 정비, 집현전을 중심으로 한 문물의 진흥 등을 지휘 감독하는 업무를 맡았습니다.
이에 반해 맹사성은 시험감독관으로 과거 응시자들의 문학적, 학문적 고영을 점검하는 일을 담당했습니다. 게다가 음률에 정통해 악공을 가르치는 업무까지도 도맡아 처리했다고 합니다.
맡은 역할과 성격을 떠나 황희와 맹사성은 청렴하고 공과 사를 철저하게 구분했다는 점은 같았습니다.
과학혁명의 장영실
장영실의 태생은 정확한 기록이 찾아볼 수 가 없는데 조선시대가 양반중심의 사회였던 점을 감안하면 천민출신의 장영실의 기록이 남아 있지 않은 것은 당연한 일일 수도 있습니다.
장영실은 세종에게 발탁된 이후 중국 사신을 호종하는 직책을 부여받고 은밀히 중국의 선진 기술을 익힌 것으로 보여집니다. 그는 중국에서 귀국 후 궁중 기술자로 있으면서 기술학자의 삶을 살아가기 시작합니다.
뛰어난 능력 덕분으로 노비 신분에서 면천이 되었으며, 상의원별좌라는 직책을 부여받았습니다.
장영실의 과학적 업적 중 가장 뛰어난 것은 앙부일구와 자격루입니다. 앙부일구의 청동으로 제작이 되었는데 솥같이 생긴 반구속에 그림자 침이 한가운데 우뚝 솟아 있는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앙부일구의 위대함은 바로 반구로 제작이 되었다는 점입니다. 이것은 당시에 태양이 반원을 그리며 움직인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뜻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현재의 과학에서처럼 지구가 태양 주변을 낮 동안 반원을 그리며 돈다는 사실이며 이는 지동설의 논리를 얻어낼수 있기 때문입니다.
장영실은 이외에도 금속활자 주조 사업에도 참여해 조선시대의 활판인쇄술의 대명사인 갑인자와 인쇄기를 완성하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조선시대 과학발전을 위해 일생을 바친 뛰어난 과학기술자 였지만 노후 삶에 대한 기록이 전해지고 있지 않아 아쉬울따름입니다.
음악의 귀재 박연
세종시대 또다른 업적으로 바로 음악체계를 정리했다는 것입니다. 세종이 음악에도 조예가 깊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세종 역시 박연의 가르침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박연은 조선 최고의 음악가로 칭송을 받고 있습니다. 다만 박연이 어떻게 음악에 심취하고 음악의 대가가 되었는지는 알려지지 않고 있습니다.
하지만 조선의 음악을 최고의 경지로 끌어올린 사람이 박연이라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왕도정치를 꿈꾸어 왔던 세종은 즉위 시점부터 사회질서를 바로 잡기 위해 유교의례를 정립하고 싶었습니다. 유교에서 의례는 무엇보다도 중요했고 이 의례에서 음악은 중요한 요소였습니다.
세종 대의 음악적 부흥은 아악의 부흥, 악기의 제작, 향악의 창작, 정간보의 창안 등으로 볼 수 있으며 이 모든 것이 박연에 의해 이루어진 것입니다.
박연은 아악을 정리하면서 향악과 아악의 새로운 조합을 시도했는데 이것은 조선 음악의 독자성을 강조하며 향악에 대한 연구를 지속적으로 했기 때문입니다.
결과적으로 궁중음악에서도 중국의 것을 원용하지 않게 되었으며 우리만의 음악을 사용하게 된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