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다섯번째 임금 문종은 세종과 소현왕후의 장남으로 세종 즉위 3년이 되던 해에 왕세자로 책봉이 되었습니다.
문종은 1421년 8살의 나이로 왕세자로 책봉되어 무려 29년간 왕세자로 지냈으며 이 중 세종의 마지막 8년동안 세종 대신 섭정을 하였습니다.
문종의 섭정 배경
문종의 섭정 배경을 살펴보면 선왕이었던 세종이 즉위 초부터 갖은 질병을 앓으며 건강문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1436년 세종이 병상에 누운 시기 왕세자인 문종의 나이 23세였습니다. 이때 세종은 왕세자에게 서무결재권을 넘겨주고 사실상 상왕으로 물러나며 왕세자의 섭정이 시작되었습니다.
하지만 신하들의 반대로 계획이 무산되자 세종은 어쩔 수 없이 업무량을 줄이기 위한 방안으로 육조직계제 대신 의정부서사제를 다시 운영하게 됩니다.
우선 의정부서사제를 통해 업무량을 줄이면서 건강회복에 치중하였지만 병세가 더욱 악화되면서 결국 다시 왕세자에게 서무 결재권을 넘겨주기로 선언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신하들의 반발을 잠재우고자 섭정에 필요한 첨사원을 설치하였습니다. 사실 사원은 이때 처음 신설된 것은 아니고 고려시절 동궁전의 서무를 관장하기 위해 만들었던 첨사부 제도를 참고한 제도입니다.
이때가 문종의 나이 29세였습니다. 문종은 왕과 같이 남쪽을 향해 앉아 조회를 진행하는 것은 물론 국가의 중대사를 제외한 모든 업무에 대한 결재권를 시행하였습니다.
문종 조선의 다섯번째 왕 등극
1450년 세종이 승하하고 문종은 8년간의 섭정을 끝내고 조선의 다섯번째 왕으로 등극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문종 역시 건강이 좋지 않았는데 세자 시절 과중한 업무로 인해 병세가 심해지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렇게 안타깝게도 문종은 즉위기간 대부분 시간을 병상에서 보내야만 했습니다.
문종 즉위 이후 왕권은 부왕인 세종대에 비해 약화가 되었습니다. 섭정 기간동안 수양대군과 안평대군 등 다른 왕족들의 세력이 점차 커져갔기 때문입니다.
이에 조정의 관료들은 종친들에 대한 탄핵이 잦았으며 문종 집권 내내 종친과 언관들 사이에 긴장이 계속 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문종 업적
문종은 언관을 중용하면서 언론은 정치 전반에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였습니다. 바로 척불언론이 대표적입니다. 유학중심의 언관들은 불교적 경향을 배척하고 유교적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다음으로 행한 것이 이전 왕조의 역사와 병법을 정리하며 사서 편찬을 주도한 것입니다. 이는 단순히 역사를 기록하는 것에 그친것이 아니라 조선의 정치와 문화를 정리하는 작업이었기 때문입니다.

문종실록
문종실록은 1450년 3월부터 1452년 5월까지 2년 3개월 걸친 문종의 짧은 재위기간의 역사를 총 13권으로 기록하였습니다.
하지만 현재 보존되어 있는 문종실록은 1451년 12월과 1452년 1월분이 사라진 상태로 임진왜란 당시 사료를 이동하는 과정에서 사라진 것으로 추정된다고 합니다.